최근 들어 많이 하는 생각이 몇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오면서 나름 나쁘지 않다는 관찰력으로 내 취향의 사람을 걸러내왔다. 가까워질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예의를 다 하고 사소한 것도 절대 빚지지 않으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이 사람은 내 어릴 적 누구와 비슷해, 저 사람은 그 사람과 비슷해, 돼먹지도 않게 분류도 서슴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마음을 더 주고 되돌려 받지 못 하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그 모든 나의 결론이 정답이 아니었다. 확률을 따지는 건 우습다. 그냥 꽤 틀린다.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대하자, 다짐했다. 틀을 미리 만들지도 말고 후의 일을 예상하지도 말고 그냥 만나야한다. 상처를 받아도 그 편이 깔끔하다. 이리 저리 재고 계산한 후에 받는 상처는 늘 더 쓰렸다.
이게 첫 번째 생각이다.
나를 위해 하는 옳은 말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다 쓰기만 한가. 지난 달에 민선이가 우리 가족에 대해, 특히 우리 아버지에 대해 한 말을 요즘 두고두고 떠올린다. 참 단순한 말이었다. '어떤 이유라 해도 아버지께는 잘 해드려야 한다'고 했을 때, 난 발끈하면서 유치하게 편가르기를 했다. 나는 네 친구다, 하면서.
너무 적확했고 그래서 더 아팠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말이다. 민선이도 멀리서 온 친구에게 쉽게 꺼낸 말이 아니었다. 그 때 그냥 침묵할 걸, 왜 파르륵 화를 냈을까. 내가 이렇게 그 말을 곱씹으며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했을 때 상대가 순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상처 받으면 안 될 일이다. 오래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면 그 자체가 그에게는 두고두고 떠올릴 소중한 순간이 되겠지.
그 전에 먼저 내가, 내 말이 어떻게 힘을 발휘한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내 마음 속에 내가 아니라 네가 있을 때 올바르면서도 깊은 말이 나올 것이다.
이게 두 번째.
화를 파르륵 내고 미안해, 하면 상대방이 문제가 뭐야, 왜 이렇게 긴장한거야, 라며 내 얘기를 들어주는 상황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었다. 고딩 때부터 본 앨리 맥빌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리 만무하다. 난 그 흔한 엄마에게 투정부리기도 귀한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나 남자친구, 지금은 연로하신 할머니에게까지 팩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서 미안하다 하면 받아주는 건 예쁘고 귀여운 앨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데 말이다.
화를 피해야 한다. 내 안에서도 내 밖에서도. 상대가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우선 피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이젠 맞설 기운도 열정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넌 참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화를 안 내기도 할 뿐 더러 내가 화내려고 전화를 걸면 안 받는다. 아 신통방통할세. 지금 화가 나려고 하네. 아 피하자.
세 번째 생각.
갑자기 내 나이가 한탄스러워졌다. 왜 더 열심히 살지 못 했을까.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내년을 희망으로 기다리는 마음과 상통하는 다짐이다.
그런데 쫌 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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