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해 조금은 원망스러웠지만
뒤돌아서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랬는데 무사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스물스물 피어나던 짜증과
원래 오래 걸으면 안 되는 발인데 신발까지 도와주어 앞, 뒤, 옆으로 다 벗겨진 살갗,
이런 이유로 매일 한 번씩 주고 받는 작은 말다툼.
이 정도쯤이야 무사(無事)에 속하지.
6시 30분까지 boarding을 마치라고 했는데
게이트에 도착하니 6시 30분.
승무원이 탑승을 알리는 마지막 방송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비행기를 탔다.
자리를 확인하고 이어폰을 나눠 주기 위해 돌아다니는 승무원 아줌마를 불러 세워
"Where is the ladies' room?" 이라고 묻자 한 조각의 미소도 없이 손가락질을 하는 국적불명의 승무원.
화장실에 들어서자 생각이 났다. 비행기 안 화장실을 ladies' room 이라고 부르기엔 무리였나.
영어로 질문한 탓인지 내 옆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남자는 내가 외국인인줄 알았나보다.
한참을 빤히 쳐다보더니 그 후로는 이 쪽으로 고개도 들지 않는다.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인가를 뚫어져라 읽고 있다.
책이 정말 뚫어질 것 같다.
또 다른 책이 놓여져 있었는데 영어책이다. 'game changer'
난 짐을 잘 정리하고 후디를 푹 뒤집어 쓰고
델타의 얇디 얇은 남색 담요로 하반신을 잘 감싸 동여 메고 잠을 청했다.
기내식도 거절하고 물 한모금도 안 마시고 내리 자다 깨니 인천 도착 20분 전이란다.
잠결에 듣는 영어 방송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이해가 되더라.
꿈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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