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이 송송 들어간 보글보글 뜨끈한 김치찌개를 상상하며 현관문을 열었지만 그저 상상에 그쳐야만 했다. 이건 내 집이 아니야, 속으로 열 번을 넘게 외쳤다. 외출하고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룸메이트에게 잔뜩 화를 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서브웨이에서 대충 저녁을 때울까 하다가 옆 중국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메마른 빵 쪼가리를 뜯으면 괜히 서러운 기분이 들 거 같아서.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찬찬히 살폈다. 그래, 맛있는 걸로 기분을 풀자, 제발 맛있는 메뉴를 고르거라, 내 자신에게 주문했다. 차가운 물과 따뜻한 엽차를 동시에 주는 괜찮은 중국식당이 집 근처에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르고 고른 스페셜 메뉴는 지난 내 생일에 먹었던 메뉴와 매우 흡사했다. 약간 실망이다. 영철군에게 전화를 걸어 14불짜리 음식을 주문했는데 팁을 얼마를 줘야 하는 거냐, 물었다. 똘똘이답게 바로 대답해 주는 영철군. 이제 혼자 기분 좋게 먹는 일만 남았다. 음식이 맛있긴 했는데 조금 짰다. 이 음식 짜니까 어떻게 해 달라고 종업원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다 먹고 있었다.
영수증과 포춘 쿠키를 들고 온 웨이터는 이제 보니 늙은 아저씨였다. 목소리가 쨍알쨍알해서 어린 중국친구인가 했더니만 내 예상이 틀렸다. 포춘 쿠키는 내가 좋은 친구들 덕분에 즐겁다고 말했다. 난 지금 룸메이트와 싸우고 나왔다고. 행운과자야, 네 예상도 틀렸어.
집에 가자마자 싸이월드 사진첩, 게시판 비공개 폴더 중 그 폴더를 통째로 지워버리고 컴퓨터에 있는 사진도, 이제는 들어가보지도 않는 그 블로그도 몽땅 지워버려야지, 생각하는 중에 목이 뜨끔하여 스윽 문질렀더니 손 위에 벌레 한 마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다. 모기였나. 벌레는 알아볼 수 없어도 내 피는 금방 알아봤다. 아악 내 아까운 피. 미국 모기가 더 독한 거 같다. 무지 따갑다.
블로그에 먼가를 끄적이는 지금, 랩탑 자판이 영 맘에 안 든다. 고이 모셔두고 갔는데 왜 삐걱거리는 걸까. 오랜만에 돌아온 집, 내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여행 이야기는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적어야겠다. 사진이 많이 없어서 블로그 포스팅 용 이야기로 만들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기록해 두고 싶다. 노트북도 좀 고쳐 놓고 책상 의자도 사고 레벨업 시험도 보고 그런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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